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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굴림;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font color="#0000ff"><strong>3. 생물학의 대상</strong></font></span></p>
<span style="FONT-SIZE: 12pt; FONT-FAMILY: 굴림; mso-bidi-font-family: 굴림; mso-font-kerning: 0pt">
<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생물학을 그 연구 대상에 따라 [http://100.naver.com/100.php?id=49880 동물학]·[http://100.naver.com/100.php?id=101141 식물학]·[http://100.naver.com/100.php?id=66985 미생물학 ] 등으로 크게 나누고, 다시 척추동물학·곤충학·어류학 등으로 세분하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이와 같은 각론을 생물학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한편 대상의 수준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즉, 지구상에 서식하는 여러 생물의 상호관계와 환경과 생물과의 관계를 밝히고 생물군집의 시간적 천이 등을 알아 생물을 집단으로서 파악하는 환경생물학이나 [http://100.naver.com/100.php?id=707476 환경생물학]이나 [http://100.naver.com/100.php?id=88520 생태학]·[http://100.naver.com/100.php?id=144113 집단생물학]·진화학과, 개개의 생물개체 또는 그 속의 기관(器官)이나 조직 수준에서의 연구 및 세포와 세포 수준에서 연구하는 [http://100.naver.com/100.php?id=93258 세포생물학], 또 분자수준에서 생물을 파악하는 분자생물학 등이 있다. 이들은 생물에 대한 견해와 연구방법면에서 차이가 있다. 생물학을 주로 야외에서의 관찰이나 직관에 중점을 둔 자연사적 분야와 실험실 안에서의 분석적 분야로 나누기도 한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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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strong><font color="#993366" size="3">5) 과학혁명의 영향</font></strong></div>
<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 17세기에 물리학을 중심으로 하여 근대적 양상을 띤 과학이 성립되자, 이것은 생물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생물 현상을 경험적인 방법과 엄밀한 논리에 의해 실증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반복되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영국의 [http://100.naver.com/100.php?id=184945 W. 하비에 하비]에 의한 혈액순환의 실험적 증명(1628)과 R. 훅에 의한 [http://100.naver.com/100.php?id=726991 세포의 발견](1665)이다. 하비는 인체 내의 혈액의 흐름에 관해서 엄밀한 추론과 명쾌한 실험을 하였다. 즉, 그는 심장으로부터 일정 시간 내에 동맥으로 흘러 나가는 혈액의 양은 상상 이상으로 많기 때문에 혈액은 닫힌 공간 안을 순환하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정량적(定量的)인 논리가 사용되고, 이것이 G. 갈릴레이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형태의 추론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어서 그는 사람의 팔을 끈으로 묶어 동맥의 혈류는 정지시키지 않고 정맥의 혈류만 정지시켜 정맥 속의 혈류량의 변화를 관찰했다. 결과는 심장으로부터 팔을 묶은 곳까지의 정맥 속에는 혈액이 괴고 반대쪽 정맥 속에는 혈액이 거의 없어졌다. 이 결과를 보고 그는 혈액은 심장에서 나와 동맥으로 들어간 다음 동맥에서 정맥으로 들어가고 다시 심장으로 되돌아온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리하여 사람의 혈액순환설이 훌륭하게 증명되어 확립되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업적이다. 다른 한편, 옥스퍼드대학의 기하학교수였던 훅은 코르크라는 물질이 탄성이 크고 가벼우며, 또 안정하다는 특성이 있다는 데 흥미를 느끼고, 그 원인을 찾아보려 했다. 그는 예로부터 반복되던 코르크의 존재 이유·의의 등에 관한 사변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피하고 그 원인을 코르크 자체의 내부에서 찾았다. 이것은 경험이 자연의 수수께끼를 풀고,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만든 현미경으로 코르크의 얇은 조각을 관찰했다. 현미경이라는 도구를 사용한 것은 인간의 감각을 도구에 의해 확장함으로써 보다 세밀한 관찰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렇게 하여 거기에서 세포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코르크가 세포의 집단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코르크라는 물질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확신하고, 자신의 과학방법론이 옳았음을 증명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아가서 목탄과 몇 종류의 살아 있는 식물에 대해서도 얇은 조각을 만들어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그것들의 세포를 발견하였다. 위의 두 사람 외에, 이 시기에는 M. 말피기에 의한 [http://100.naver.com/100.php?id=62989 모세혈관](1661)과 [http://100.naver.com/100.php?id=134147 적혈구](1668)의 발견, J. 스밤메르담의 곤충에 대한 세밀한 관찰(1658), A. 레벤후크의 미소생물(1675, 1680) 및 정자의 관찰(1677), R. 그라프의 이자 기능의 연구(1664), R. 보일의 호흡 연구(1660), G. 보렐리에 의한 운동의 역학적 연구(1680), T. 시드남에 의한 경험주의 의학의 연구, R.J. 카메라리우스에 의한 식물 생식기관의 연구(1694) 등 엄청난 수의 선구적인 연구가 속출하였다. 이러한 연구의 공통된 특징은 생물 현상을 경험적·실증적으로 해명하려는 자세였으며, 당시 물리학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과학혁명의 영향을 볼 수가 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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