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또는 동물의 질병을 예방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의약품에 관한 기초 및 응용과학을 다루는 학문.
약의 창제(創製) ·생산 ·관리 등에 관한 이론 및 응용의 종합학문이다. 따라서 약학은 약을 중심으로 하여 화학 ·물리학 ·생물학 등의 분야를 포함하며, 그 연구 수단에 따라 학문적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약학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약용자원(藥用資源)을 천연물에서 구하여 그에 대한 감식(鑑識) ·평가의 학문적 방법을 탐구하기 위하여 생약학(生藥學)이 생겼고, 약을 인체에 작용하는 약제(藥劑)로 만들기 위해 약제학이 발달되었으며, 생물학적인 측면으로의 발전이 약용식물학 ·약리학 등으로 결부되었다. 또 화학적인 각도에서의 발전의 결과로 약화학(藥化學) ·위생화학(衛生化學) ·재판화학(裁判化學) ·약품분석화학 등의 학과가 파생되었다.
제약의 공업화에 따라 약품제조화학 ·제약공학 등의 분과가 생겼고, 약의 작용 메커니즘 및 생명현상의 화학적 연구를 위한 생물화학 ·미생물학 ·내분비화학(內分泌化學) 등이 약학영역에서 독자적인 발전을 하고 있으며, 생체 내에서의 약물대사(藥物代謝)의 거동조정(擧動調整)을 위한 생체약물학(生體藥物學:biopharmaceutics) ·약물대사속도론(藥物代謝速度論:pharmacokinetics) 등이 근래 크게 발전되고 있다. 약제학 ·생체약물학 ·약물대사속도론 등에 물리화학적 ·이론적 근거와 연구방법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약품물리화학(physical pharmacy)의 중요성 증대되고 있고, 약물의 올바른 임상적 응용을 위한 임상약학(臨床藥學:clinical pharmacy)의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약학이 의약과학(醫藥科學:pharmaceutical science) ·공업약학(工業藥學:industrial pharmacy) ·임상약학의 세 분야 외에, 약의 사회성 ·경제성을 고려한 약업경제학 ·약국경영학 등도 필요하다. 근래 보건의 방향이 점차 질병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영양섭취 ·위생적인 생활환경조성 및 공해방지 등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영양학 ·식품위생학 ·공해화학 등이 약학의 분과로 크게 발전되고 있으며, 예방약학(豫防藥學)이라는 새로운 분야도 생겨나고 있다.
사람의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있어서 의학과 약학의 양대분야가 있으며 전문직으로서 의학자, 의사 및 약학자, 약사가 있다. 이와 같은 분업적 사고방식과 체계에 의하면 의학과 약학이 확연하게 구별되어 있으며, 또 구별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질병의 예방과 치료라는 공통의 목표와 목적을 지니고 있는 만큼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으며 확연하게 구분되기 힘든 관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다. 약의 본질 및 약물요법에 통달함이 없이 완전한 의료가 성립될 수 없고, 또 질병의 본질 및 병태(病態)에 대한 이해 없이 완전한 약학이 성립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제도적으로 의학과 약학이 분리되어 있지 않던 옛날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약물학자가 곧 의학자요, 의학자가 곧 약물학자인 관계에 있었다. 예컨대 백제의 관부(官府)에는 내관부사(內官部司) 중에 약부(藥部)라는 관서가 있었으나 약재의 조달이나 조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의술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기관(醫藥機關)을 칭한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職官志)> 중의 약전(藥典)도 궁정용 의료기관의 명칭이며, 고려의 약점(藥店) ·약국(藥局) ·약원(藥員) 등도 이와 비슷한 관서인 내의원(內醫院)의 명칭으로 되어 있었던 사실로 미루어, 약학이라는 개념이 넓은 의미에서의 의료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약사여래(藥師如來)도 중생의 병을 고치고 재난을 막아주는 부처님이라는 뜻이지 오늘날의 분업적인 약사(藥師)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의유일체(醫儒一體)라고 하여 유학자가 철학적으로 의학원리를 연구하고 본초학적(本草學的)인 약물학의 지식도 아울러 터득함으로써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일도 하였음을 실학자(實學者)들 중에서 그 예를 많이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아래서 의학사(醫學史)와 약학사(藥學史)를 분명하게 구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다만 중점을 어디에 두어 오늘의 의학과 약학의 연원을 찾느냐에 따라서 구분이 될 따름이다.
한국 약학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본초학 및 향약(鄕藥)의 발전과정을 밝히는 것이 한국의 약학사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의 본초학이 중국의 본초학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본래 한국 민족 고유의 본초학 및 향약과 향방(鄕方:한국 고유의 처방)이 있어 그것을 기초로 하여, 이에 도입된 중국의 본초학을 혼화양성(混和釀成)하여 집대성한 것이 한국의 본초학이라 함은 여러 가지 문헌의 고증을 통하여 증명된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와서 세종(世宗)의 향약정책(鄕藥政策)을 정점으로 하여 한국적 약학이 크게 신장하였으며, 조선 말엽의 이제마(李濟馬:1837~1900)가 체계를 세운 사상체질적 약성관(四象體質的藥性觀)에 의한 약물분류는 독창적인 약학의 업적이다. 개화기에 들어서면서 개항(開港)과 더불어 양약 및 서양의술이 한국에 도입되면서부터 약학의 근대화가 시작되었다. 1894년(고종31) 개화당의 새 정부가 성립되어 이른바 갑오개혁(甲午改革)을 통하여 모든 체제가 근대화됨에 따라 점차 약제사(藥劑師) ·제약사(製藥師) ·약제사(藥劑士) ·약종상(藥種商) 등의 명칭이 의 ·약 관계의 관제(官制) 규정 등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09년 내부위생국(內部衛生局)에 위생시험소(衛生試驗所)가 설치된 것이 한국 최초의 현대 약학관계 시험기관이라고 할 수 있으며, 1910년 내부령(內部令) 제5호로 공포된 ‘대한의원 부속의학교 규칙(大韓醫院附屬醫學校規則)’에 약학과의 규정이 있는데, 이것이 현대 약학교육기관의 시초라고 할 수 있으나, 일본의 병탄(倂呑)으로 실현되지 못한 채 유산되었다. 한국 최초의 약학자로서는 일본에서 약학교육을 받고 약제사가 되어 귀국하여 대한의원(大韓醫院) 교수로 임명되었던 유세환(劉世煥)을 들 수 있다. 1915년에 설치된 조선약학강습소가 1918년에 발전적으로 2년제의 조선약학교(朝鮮藥學校)로 설치된 것이 한국약학교육의 실질적인 시초라고 할 수 있다.
1913년 약사학회(藥史學會)가 발족되는 개회식에서 프랑스 파리의 약학전문학교 교장이던 기냐르 교수는 약학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약학이란 과학 ·기술 및 직업이 합체가 된 것이다. 따라서 그 역사는 동시에 물리 ·화학 및 자연과학의 역사이며, 또한 의학원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또한 여러 가지 과학기기(科學機器)의 고고학적 연구를 포함한 조제술의 역사이기도 하며, 그 나라 그 시대의 사회 ·경제 등과 관련되는 기술자인 동시에 상인(商人)의 측면도 지닌 약사(藥師)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서유럽의 자연발생적인 약학과는 달리 동양 여러 나라의 현대약학의 발상은 서유럽약학의 이식으로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이식된 풍토에서의 토착화 문제가 크게 대두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의 약학이 드디어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음은 경이적인 일이다.
현재 한국에는 약학인구가 약 2만 5000명에 달하며, 약학교육기관으로서 약학대학이 20개, 약학연구기관으로는 국립보건연구원, 서울대학 생약연구소, 각 시 ·도 보건연구소 등이 있고, 전문학회로서는 대한약학회(大韓藥學會) ·한국약제학회(韓國藥劑學會) ·한국생약학회(韓國生藥學會) ·고려인삼학회(高麗人蔘學會) 등이 있어 활발하게 학문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국제적인 참여로서는 세계약학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Pharmaceutique:FIP)의 이사국이며, 아시아약학연맹(Federation of Asian Pharmaceutical Associations:FAPA)의 회원국이고, 1968년과 1982년의 2차에 걸쳐서 아시아 약학회의(Asian Congress of Pharmaceutical Sciences)를 개최한 바 있다. 근래 약학연구의 성과가 제약산업에 반영되어 한국의 제약사업이 질과 양에 있어서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되었다. 한국 약학의 다양한 분과가 모두 발전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분야가 한국의 천연물을 대상으로 하여 약효물질을 탐색하는 생약학(生藥學) ·천연물약학(天然物藥學) 및 인삼과학 등의 분야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