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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종합적인 과학. 인종·민족 등 인류집단 사이의 차이점과 유사성에 관한 기술(記述)과 설명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여러 가지 학문과 다른 점은, 집단의 변이(變異)를 비교함으로써 파악되는 방법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신체나 문화에 대한 모든 양상을 될 수 있는 대로 시간적·공간적으로 넓게 해명하고자 하는 전체론적인 자세에 있다. <안트로폴로고스(anthropologos)>라는 말을 맨 처음 쓴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러나 이것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의미였으며, 16세기의 라틴어 <안트로폴로기움(anthropologium)>도 신체구조를 가리키는 데 지나지 않았다. 17세기에 처음으로 신성(身性)과 문화에 나타난 인간의 특성이라는 오늘날의 용법에 가까운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인류학적인 관심이 급속하게 늘어난 것은 대항해시대에 유럽인의 항해자나 정복자가 자기들과 다른 사람들을 세계 각지에서 만날 때부터였다. 그들이 객관적인 기술을 많이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민족에 대한 해석은 일반적으로 성서의 기술에서 근거를 찾는 것에 그쳤다. 그들은 비(非)유럽인이 거칠고 세련되지 못했으며 예술을 모르는 야만인이고, 도덕관념이 없으며, 이는 원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8세기 후반 이래로 지성이 그리스도교의 굴레에서 점차 풀려나고 지질학적인 사실이 차츰 밝혀지는 한편, 특히 진화론이 힘을 얻게 되면서 인류의 변이를 과학적으로 다루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C.R. 다윈의 《종(種)의 기원》이 출판된 1859년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학회가 창설된 해이기도 하다. 당시부터 철도건설·광산개발 등의 대규모공사가 실시됨에 따라 홍적세(洪積世)의 석기(石器)나 화석인골(化石人骨)의 발견이 늘어나, 성경에서 말하는 대홍수 이전에도 인류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리하여 인류는 신의 창조물이 아니며 원숭이와 기원을 함께 하는 동물계의 일원이라는 주장이 신빙성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미개인을 노아의 방주 전설과 결부시키려는 사고방식은 줄었지만, 그들은 문명인이 아주 옛날에 거친 석기시대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소박한 진화론적 견해를 갖게 되었다. J.J. 바호펜·E.B. 타일러·W.B. 스펜서·L.H. 모건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이론은 고전적 진화주의로 불려지는데, 그들은 세계의 모든 민족은 유럽문명을 정점으로 하는 진화적 발전단계의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여행자·식민자(植民者)·선교사에 의하여 미개민족에 관한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문화요소는 단계적으로 발명되어 진보하는 단순한 것이 아니고, 다른 민족에게서 전파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전파론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그 뒤, 문화진화론은 새로운 양상으로 부활하여 오늘날에도 유력하다. 19세기는 인종의 다양성이 해명된 시대였지만 그 결과, 현재 살아 있는 여러 인종은 빙하시대의 피테칸트로푸스(원인)와 네안데르탈인(舊人, 현재는 호모사피엔스의 亞種)과는 달리 모든 호모사피엔스종에 포함된 것이라는 점이 인정되었다. 또 동일인종 중에도 문화적으로 다른 집단이 있으며, 또한 문화적으로 비슷하더라도 다른 인종에 속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인식되었다. 인종이라는 생물학적 개념과 민족이라는 문화적 개념을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은 인류학의 커다란 공적이다. 화석인류 진화의 큰 줄기는 19세기 말까지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제3기 영장류에서 원인(猿人)·원인(原人)·구인·신인으로 이어지는 진화계열은 1930년대 이후에 확인된 것으로, 오늘날에도 그들의 생존연대와 진화의 과정에 대해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인류학은 인간의 신성(身性)을 연구하는 자연인류학과 여러 민족의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인류학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유럽, 특히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자연인류학을 인류학이라 하고 미개사회와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에는 민족학이란 명칭을 사용해 왔다. 제2차세계대전 뒤 미국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는 다시 인류학을 넓은 뜻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선사고고학은 독자적인 방법과 분야를 가진 독립된 학문이지만, 서유럽에서도 인류학이 그 초창기에 원시·미개인과 문화에만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이 학문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미국에서는 사회·언어·심리 등의 인류학과 함께 선사고고학을 문화인류학의 한 분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인류학도 형태·생리·유전학 등의 전문분야로 나누어져 있다. 종합적인 인류과학을 지향하면서도, 개개의 연구자는 전문분야로 나누어지고, 또 독자적인 연구영역을 한정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div> | <div style="FONT-SIZE: 13px; LINE-HEIGHT: 180%; TEXT-ALIGN: justify">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종합적인 과학. 인종·민족 등 인류집단 사이의 차이점과 유사성에 관한 기술(記述)과 설명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여러 가지 학문과 다른 점은, 집단의 변이(變異)를 비교함으로써 파악되는 방법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신체나 문화에 대한 모든 양상을 될 수 있는 대로 시간적·공간적으로 넓게 해명하고자 하는 전체론적인 자세에 있다. <안트로폴로고스(anthropologos)>라는 말을 맨 처음 쓴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러나 이것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의미였으며, 16세기의 라틴어 <안트로폴로기움(anthropologium)>도 신체구조를 가리키는 데 지나지 않았다. 17세기에 처음으로 신성(身性)과 문화에 나타난 인간의 특성이라는 오늘날의 용법에 가까운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인류학적인 관심이 급속하게 늘어난 것은 대항해시대에 유럽인의 항해자나 정복자가 자기들과 다른 사람들을 세계 각지에서 만날 때부터였다. 그들이 객관적인 기술을 많이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민족에 대한 해석은 일반적으로 성서의 기술에서 근거를 찾는 것에 그쳤다. 그들은 비(非)유럽인이 거칠고 세련되지 못했으며 예술을 모르는 야만인이고, 도덕관념이 없으며, 이는 원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8세기 후반 이래로 지성이 그리스도교의 굴레에서 점차 풀려나고 지질학적인 사실이 차츰 밝혀지는 한편, 특히 진화론이 힘을 얻게 되면서 인류의 변이를 과학적으로 다루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C.R. 다윈의 《종(種)의 기원》이 출판된 1859년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학회가 창설된 해이기도 하다. 당시부터 철도건설·광산개발 등의 대규모공사가 실시됨에 따라 홍적세(洪積世)의 석기(石器)나 화석인골(化石人骨)의 발견이 늘어나, 성경에서 말하는 대홍수 이전에도 인류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리하여 인류는 신의 창조물이 아니며 원숭이와 기원을 함께 하는 동물계의 일원이라는 주장이 신빙성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미개인을 노아의 방주 전설과 결부시키려는 사고방식은 줄었지만, 그들은 문명인이 아주 옛날에 거친 석기시대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소박한 진화론적 견해를 갖게 되었다. J.J. 바호펜·E.B. 타일러·W.B. 스펜서·L.H. 모건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이론은 고전적 진화주의로 불려지는데, 그들은 세계의 모든 민족은 유럽문명을 정점으로 하는 진화적 발전단계의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여행자·식민자(植民者)·선교사에 의하여 미개민족에 관한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문화요소는 단계적으로 발명되어 진보하는 단순한 것이 아니고, 다른 민족에게서 전파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전파론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그 뒤, 문화진화론은 새로운 양상으로 부활하여 오늘날에도 유력하다. 19세기는 인종의 다양성이 해명된 시대였지만 그 결과, 현재 살아 있는 여러 인종은 빙하시대의 피테칸트로푸스(원인)와 네안데르탈인(舊人, 현재는 호모사피엔스의 亞種)과는 달리 모든 호모사피엔스종에 포함된 것이라는 점이 인정되었다. 또 동일인종 중에도 문화적으로 다른 집단이 있으며, 또한 문화적으로 비슷하더라도 다른 인종에 속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인식되었다. 인종이라는 생물학적 개념과 민족이라는 문화적 개념을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은 인류학의 커다란 공적이다. 화석인류 진화의 큰 줄기는 19세기 말까지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제3기 영장류에서 원인(猿人)·원인(原人)·구인·신인으로 이어지는 진화계열은 1930년대 이후에 확인된 것으로, 오늘날에도 그들의 생존연대와 진화의 과정에 대해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인류학은 인간의 신성(身性)을 연구하는 자연인류학과 여러 민족의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인류학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유럽, 특히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자연인류학을 인류학이라 하고 미개사회와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에는 민족학이란 명칭을 사용해 왔다. 제2차세계대전 뒤 미국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는 다시 인류학을 넓은 뜻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선사고고학은 독자적인 방법과 분야를 가진 독립된 학문이지만, 서유럽에서도 인류학이 그 초창기에 원시·미개인과 문화에만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이 학문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미국에서는 사회·언어·심리 등의 인류학과 함께 선사고고학을 문화인류학의 한 분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인류학도 형태·생리·유전학 등의 전문분야로 나누어져 있다. 종합적인 인류과학을 지향하면서도, 개개의 연구자는 전문분야로 나누어지고, 또 독자적인 연구영역을 한정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di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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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st revision as of 22:14, 18 January 2006
인류학 (Anthropology)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종합적인 과학. 인종·민족 등 인류집단 사이의 차이점과 유사성에 관한 기술(記述)과 설명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여러 가지 학문과 다른 점은, 집단의 변이(變異)를 비교함으로써 파악되는 방법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신체나 문화에 대한 모든 양상을 될 수 있는 대로 시간적·공간적으로 넓게 해명하고자 하는 전체론적인 자세에 있다. <안트로폴로고스(anthropologos)>라는 말을 맨 처음 쓴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러나 이것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의미였으며, 16세기의 라틴어 <안트로폴로기움(anthropologium)>도 신체구조를 가리키는 데 지나지 않았다. 17세기에 처음으로 신성(身性)과 문화에 나타난 인간의 특성이라는 오늘날의 용법에 가까운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인류학적인 관심이 급속하게 늘어난 것은 대항해시대에 유럽인의 항해자나 정복자가 자기들과 다른 사람들을 세계 각지에서 만날 때부터였다. 그들이 객관적인 기술을 많이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민족에 대한 해석은 일반적으로 성서의 기술에서 근거를 찾는 것에 그쳤다. 그들은 비(非)유럽인이 거칠고 세련되지 못했으며 예술을 모르는 야만인이고, 도덕관념이 없으며, 이는 원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8세기 후반 이래로 지성이 그리스도교의 굴레에서 점차 풀려나고 지질학적인 사실이 차츰 밝혀지는 한편, 특히 진화론이 힘을 얻게 되면서 인류의 변이를 과학적으로 다루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C.R. 다윈의 《종(種)의 기원》이 출판된 1859년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학회가 창설된 해이기도 하다. 당시부터 철도건설·광산개발 등의 대규모공사가 실시됨에 따라 홍적세(洪積世)의 석기(石器)나 화석인골(化石人骨)의 발견이 늘어나, 성경에서 말하는 대홍수 이전에도 인류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리하여 인류는 신의 창조물이 아니며 원숭이와 기원을 함께 하는 동물계의 일원이라는 주장이 신빙성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미개인을 노아의 방주 전설과 결부시키려는 사고방식은 줄었지만, 그들은 문명인이 아주 옛날에 거친 석기시대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소박한 진화론적 견해를 갖게 되었다. J.J. 바호펜·E.B. 타일러·W.B. 스펜서·L.H. 모건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이론은 고전적 진화주의로 불려지는데, 그들은 세계의 모든 민족은 유럽문명을 정점으로 하는 진화적 발전단계의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여행자·식민자(植民者)·선교사에 의하여 미개민족에 관한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문화요소는 단계적으로 발명되어 진보하는 단순한 것이 아니고, 다른 민족에게서 전파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전파론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그 뒤, 문화진화론은 새로운 양상으로 부활하여 오늘날에도 유력하다. 19세기는 인종의 다양성이 해명된 시대였지만 그 결과, 현재 살아 있는 여러 인종은 빙하시대의 피테칸트로푸스(원인)와 네안데르탈인(舊人, 현재는 호모사피엔스의 亞種)과는 달리 모든 호모사피엔스종에 포함된 것이라는 점이 인정되었다. 또 동일인종 중에도 문화적으로 다른 집단이 있으며, 또한 문화적으로 비슷하더라도 다른 인종에 속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인식되었다. 인종이라는 생물학적 개념과 민족이라는 문화적 개념을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은 인류학의 커다란 공적이다. 화석인류 진화의 큰 줄기는 19세기 말까지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제3기 영장류에서 원인(猿人)·원인(原人)·구인·신인으로 이어지는 진화계열은 1930년대 이후에 확인된 것으로, 오늘날에도 그들의 생존연대와 진화의 과정에 대해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인류학은 인간의 신성(身性)을 연구하는 자연인류학과 여러 민족의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인류학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유럽, 특히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자연인류학을 인류학이라 하고 미개사회와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에는 민족학이란 명칭을 사용해 왔다. 제2차세계대전 뒤 미국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는 다시 인류학을 넓은 뜻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선사고고학은 독자적인 방법과 분야를 가진 독립된 학문이지만, 서유럽에서도 인류학이 그 초창기에 원시·미개인과 문화에만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이 학문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미국에서는 사회·언어·심리 등의 인류학과 함께 선사고고학을 문화인류학의 한 분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인류학도 형태·생리·유전학 등의 전문분야로 나누어져 있다. 종합적인 인류과학을 지향하면서도, 개개의 연구자는 전문분야로 나누어지고, 또 독자적인 연구영역을 한정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